구제역 사태로 본 동물 관련 윤리 문제
연구교수 이일학
생물의 구조와 기능에 관한 지식은 동물을 사용한 연구를 통하여 축적되어 왔으며& 이 지식은 인간에 대한 이해로 이어져 의학적 성취의 근거가 되어왔다. 오늘날 많은 의약품이나 의료기구의 개발에 있어서도 동물을 사용한 독성 시험은 필수적인 과정으로 받아들여진다. 20세기 이후 생물학과 관련 산업이 급속도로 발전함에 따라 동물을 사용한 실험이 크게 늘었으며 동시에 축산도 산업화의 과정을 거치게 되었으며 이것은 더 많은 동물을 ‘이용’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실험 대부분이 실험에 사용된 동물에게 고통을 가하거나 죽음을 가져오게 된다면 과연 동물실험이 도덕적으로 정당화 될 수 있는가 의문을 품은 사람들이 있다. 동물실험의 불가피함을 인정하는 경우라도 동물을 대우하는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도 가능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동물을 이용하는 것에 대해 심각한 반대 견해를 가진 사람은 많지 않다. 그렇지만 왜 정당한지 생각해본 경우도 없을 것이다. 반면 동물의 이용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반대하는지& 그 주장이 옳은지 살펴볼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동물의 이용을 정당화하거나 반대하는 주장을 살펴볼 것이다. 동물의 대우에 관한 문제에서 축산업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지만& 여기서는 주로 과학연구 과정의 동물 사용에 초점을 맞추도록 할 것이다.
동물 이용에 대한 입장들 동물 이용에 대한 찬성과 반대 입장에서 흔히 제시되는 주장은 다음과 같다.
1. 동물 이용의 정당화 a. 동물은 기계이며 이성이 없다 (기계론) b. 동물을 이용하는 것은 인간의 이익과 생존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동물복지) 2. 동물 이용의 반대 a. 동물도 인간과 같이 고통을 느낄 수 있다 (동등한 처우) b. 동물은 죽임을 당하지 않을 권리를 가지고 있다 (동물 권리)
각각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1-a. 주장을 살펴보자. 이 주장은 인간 사회가 기본적으로 동물에 대해 유지하였던 태도이다. 데카르트(Rene Descartes)는 동물은 영혼이 없으며& 영혼이 없는 동물은 기계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보았다. 영혼이 없는 동물에게는 고통과 같은 것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물에게 고통이 없다는 것은 우리 경험에 부합하지 않는다. 물론 동물이 고통(또는 좀더 구체적으로 신체적 통증)을 느끼고 피하려는 행위는 인간의 비슷한 행위와 다르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즉 동물의 행위는 본능에 의한 것이지 인간이 취하는 이성적 행위와는 다르고& 우리는 동물이 고통을 피하는 행위를 인간의 행위로 옮겨와서 (비유적으로 analogous) 이해하는 오류를 저지른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주장을 완전히 극복하기란 무척 어렵다. 그러나 과연 동물이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는 주장이 타당한 것인가? 우리의 판단 방식은 기본적으로 유사점에 집중하여 이루어진다 (사실 다른 방식을 상상할 수 없다)는 점에서 ‘사람과 동물이 고통에 대해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면 동물도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주장은 타당성을 갖는다고 할 것이다. 사실 동물 실험의 바탕에도 인간과 동물이 보이는 행동 양태나 생리학적 반응은 동등한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도덕적으로 한 공동체에 속한 사람은 다른 성원의 경험에 공감(sympathy)하고 문제의식을 공유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협력한다(compassion). 그런데 이런 공감의 능력이 종(種)의 구분을 뛰어넘어서도 가능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경험이다. 1-a의 주장에서 한발 물러선 주장은 동물 이용을 일종의 필요악으로 이해하는 입장이다. 즉 동물이 고통을 느낄 수도 있고& 동물의 고통은 도덕적인 의미를 갖지만 동물을 이용하지 않고서는 인간 사회가 유지될 수 없기 때문에 동물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동물을 도덕적으로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인간과 동등한 수준으로 존중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이들에게 인간은 동물보다 더 나은 가치를 갖는데 왜냐하면 인간은 자유의지& 합리성& 창조성& 감정& 영성& 도덕성& 개별성& 의사소통& 자기 인식과 의식과 같은 높은 수준의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주장에도 문제가 있는데& 이러한 능력은 구분의 기준(criteria)이라기 보다 사람에게 주어진 가능성(possibilities)이며 신장해야 할 측면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 능력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사람과 의사소통하는 강아지를 치매 환자보다 우월하게 대우해야 하는 역설이 발생하는 것이다. 한편 가능성만으로 도덕적 지위를 부여하는 것은 우리의 일반적인 도덕경험에 일치하지 않는 문제가 있다(어떤 고시생이 변호사가 될 가능성이 있다 해서 그를 변호사로 대우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없는 것과 비슷하다). 2-a의 주장은 동물과 사람에게 다양한 능력이 공통으로 존재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벤담(J Bentham)은 사람과 동물 모두 즐거움/괴로움의 경험을 할 수 있으며& 이 경험이야말로 도덕적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동물도 사람과 같이 고통을 경험할 수 있는 한 동물의 고통도 사회의 공리(utility)를 낮추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이들은 동물과 사람 모두 고통을 경험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면 동물의 고통을 피하는 선택이 윤리적이라고 주장한다(P Singer. 동물해방). 인간과 동물에게 허용된 (그리고 실현된) 가능성에는 차이가 있으나 고통을 느낄 수 있고 피하려 한다는 점에서는 동등하다는 주장인데 최소한 고통을 피하려 하는 차원에서는 사람과 동물을 동등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물에게 불필요한 고통과 죽음과 같은 피해(harm)를 입히는 것이 도덕으로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이 오늘날 동물해방운동 (animal liberation)의 철학적 근거가 되고 있다. 특히 죽음과 같은 치명적인 피해는 절대로 정당화 될 수 없고 따라서 동물의 과학적 이용도 [그것이 사회적 기준을 넘어설 정도로] 지나친 것이라면 금지되어야 하는 것이다. 2-b 의 주장은 단순히 피해를 삼가는 입장에서 한 걸음 더 나간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야 하는 이유가 그 내재적 가치 때문인 것처럼 동물 역시 내재적 가치와 도덕적 지위를 갖는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동물의 도덕 지위를 인간과 동일한 수준으로 이해하고 이들이 이익(welfare& freedom& autonomy)을 누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동물의 권리는 단순히 명목상의 권리가 아니라 사람이 이를 보장할 의무까지 함의한다. 이러한 보장이란 동물 이용의 과정에서 잔인한 행위를 금지하는 수준이 아니라 모든 종류의 동물 이용을 중단하는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한다. 이상 네 가지 가능한 입장을 살펴보았다. 1-a의 입장을 유지하는 경우는 오늘날 동물에 관한 경험적 이해에 부합하지 않는다. 이제 유지할 수 있는 입장은 1-b& 2-a& 2-b의 세 가지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떤 입장의 도덕적 가치는 그것의 실현가능성& 내적 통일성& 경험과의 부합 등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1-b의 관점을 흔히 동물 복지(animal welfare)를 중시하는 접근이라고& 2-a 와 2-b는 동물 권리(animal right) 중시하는 접근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그런데 결국 동물 이용에 대한 허용 범위는 금지를 통한 동물의 보호와 사회적 이익 사이의 균형을 이루는 점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동물 권리의 실현 동물을 악의적으로 대우하는 일은 이제 정당화될 수 없다. 더 나아가 동물을 대우하는 방식을 결정함에 있어 연구 결과의 산출만을 유일한 고려 사항으로 삼는 행위 역시 문제가 있을 것이다. 즉 최소한 동물에게는 부당한 피해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는 합의가 이루어져 있다 (동물 학대를 금지하는 법률& 실험동물 관리에 관련된 법률 등). 그런데 이 권리는 어떻게 실현되는가? 동물이 자신의 권리가 침해 되었다고 주장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이 권리는 명목에 불과하고 개별연구자의 양심에 맡길 수밖에 없는가? 우선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동물을 대표할 수 있는 기구(representative of animals)를 지명하는 일이다. 이것은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에서 대리인(attorney)를 지명하여 권한을 보장하는 것에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두번째로 실험동물위원회와 같이 동물 이용의 방식을 감독하는 제도를 운영하는 것이 가능하다. 연구자들의 행위를 감독하는 자율적 제도의 효율성을 믿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겐 ‘동물의 복지를 증진하는 이유가 결국 죽이기 위한 것’이라는 해결하기 어려운 딜레마가 있다. 이것은 육식동물로서 인간의 딜레마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참고 서적 * Responsible Conduct of Research& AE Shamoo and DB Resnik& OUP (2003) * 동물이용 연구윤리& 김진석& from 과학연구윤리& 유네스코한국위원회& 당대(2001) * 동물해방& 피터 싱어/김성한& 인간사랑(1999) * 동물에서 유래된 인간& 제임스 레이첼즈/김성한& 나남(2009) * Animal Rights: Current Debates and New Directions& CR Sunstein and MC Nussbaum (ed.)& OUP(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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