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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인사이드] "건강한 아이 출산 도움" vs "생명 존중 정신 뒤흔들어"

서울경제 원문 기사전송 2012-06-17 17:15

불임부부 해외 원정 '착상 전 유전자 진단'
정상적 발달 배아 선별 자궁 이식법 원하는 성별 자녀 선택 임신도 가능
국내선 특정질환외 원칙적 금지 허용 국가도 많아 법적 기준 논란

'2주 안에 모든 시술을 마무리하고 한국에 돌아올 수 있는 태국 2 weeks 패키지. 병원비, 12일간의 호텔 비용, 공항픽업, 병원통역 등의 서비스 비용을 모두 포함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전화나 문의 부탁 드립니다.'(해외병원과 국내 부부 연결해주는 A에이전시 광고문구)

오랜 세월 불임에 시달리다 체외 인공 수정 방식을 택한 부부들이 국내에서는 불법인 착상 전 유전자 진단(Preimplantation Genetic Diagnosis)을 위해 해외로 원정을 떠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착상 전 유전자 진단은 유전병의 보인자를 갖고 있거나 염색체 이상이 있는 부모가 유전적으로 정상인 아이를 가질 수 있게 하기 위해 개발된 기술이다. 배아(수정란)의 초기단계에서 하나의 세포를 떼어내 유전적 검사를 시행한 뒤 정상적 발달이 가능한 배아만을 여성의 자궁에 이식해서 임신을 유도하는 것이다.

즉 시험관 유전자나 염색체의 이상 유무를 배아 초기 단계부터 미리 점검함으로써 유전병을 가진 아이 출산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진단이다.

지난 2008년 한 방송사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통해 '120㎝ 엄지공주'라는 별칭을 얻은 골형성 부전증 환자 윤선아씨가 이 방법으로 시험관 아기 2차 시도 끝에 건강한 아들을 출산하면서 주목을 받기도 했다.

문제는 이 PGD가 우리나라에서는 불임부부라 하더라도 현행 법이 인정하는 특정질환을 갖고 있지 않을 경우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불임을 낳은 유전적 요소가 혹시 아이에게도 그대로 이어지지 않을까'라는 부모의 막연한 불안과 해외 일부 국가에서는 PGD가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는 점을 이용해 해외 병원과 한국의 불임부부를 연결시켜 주는 에이전시까지 등장한 상황이다.

법적 기준이 국가마다 다른 상황에서 건강한 아이를 출산하고 싶은 마음으로 해외 원정을 감행하는 것이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윤리적 잣대를 내세우며 비판을 제기하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PGD뿐 아니라 부모가 원하는 성별의 자녀를 낳는 선택 임신 역시 일부 해외 국가에서는 합법이라는 점을 이용하는 불임부부도 생겨나고 있어 이를 둘러싼 논란은 더욱 뜨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유전자 문제 없나 확인하고 선택 임신까지=자영업자인 민경오(43)씨는 지난 1997년과 2000년에 연이어 딸을 출산했다. 아들을 갖고 싶어 아내와 함께 셋째 계획을 곧바로 세웠지만 어느 순간부터 원하는 임신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서 오랜 시간 불임에 시달렸다.

체외 수정을 생각했지만 아내가 노산인 데다 불임 요소까지 겹치면 태어날 아이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고민을 거듭하던 이 부부에게 해외에서의 PGD를 권유한 것은 민씨의 아버지였다.

현재 미국·태국·유럽 등의 국가에서는 부부가 특정 질환을 갖고 있는지 여부와 무관하게 PGD를 허용하고 있다. 윤리적 기준이 이들보다 다소 엄격한 한국·중국·일본 등의 극동지역에서는 이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이 세 나라에서는 선택 임신도 물론 불법이다.

우리나라는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에 따라 부부 중 한 명이 다운증후군, 혈우병, 연골 무형성증 등 154종의 유전질환을 갖고 있을 경우 착상 전 유전자 진단을 허용하고 있다.

민씨는 "오랜 시간 불임에 시달렸고 아내 나이가 올해 벌써 마흔이라 유산 가능성 등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아버지의 권유를 받아들여 지난해 1월 미국으로 떠나 올해 5월 5일 건강한 아들을 출산했다"고 전했다.

민씨 부부가 미국으로 간 뒤 착상에 성공하기 까지는 8개월 가량의 시간이 걸렸다. 첫 번째 시도에서는 원하는 아들을 얻기가 힘들어 착상을 포기했고 두 번째는 일부 수정란에 염색체의 구조적 이상으로 인한 문제가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민씨 부부는 착상 전 유전자 진단을 통해 '건강한 아이 출산'과 '선택 임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은 사례인 셈이다.

민씨는 "진단에서 착상까지만 3,000만원을 썼고 아이를 낳을 때까지의 병원비와 산후조리원까지 고려하면 6,000만원이 들었다"며 "국내의 법적 기준이 완화돼 우리 같은 걱정에 시달리는 불임 부부들도 저렴한 비용으로 진단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2006년에는 63개 질환에 대해서만 허용하다가 2008년 141개, 2011년 154종까지 확대한 것"이라며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을 받지 않도록 2~3년마다 현재의 기술 수준을 토대로 심의를 해나가면서 허용 질환 개수를 늘려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윤리적으로 용납 안 돼" 비판도=이 같은 현상을 곱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만만찮다. 의학적으로 불분명한 불안을 이유로 국내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 해외 원정을 나가는 것은 생명 존중의 정신을 뒤흔들면서 도덕적 해이를 초래할 수 있다는 비판이다.

김명희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 연구부장은 "한국의 의학 기술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전제한 뒤 "국내 법이 154종의 유전질환만 진단을 허용하는 것은 권리 제한이나 규제를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을 오도시키지 않고 보호하기 위함"이라고 지적했다.

국내든 해외든 현재 의학 기술로는 154종 이외의 질환에 대해서는 검사의 신뢰성이 확연히 떨어지고 엉뚱한 진단으로 윤리적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설명이다.

구인회 가톨릭 생명윤리연구소장도 "가톨릭에서는 체외 인공수정을 통해 배아를 만드는 것 자체에 반대 입장을 갖고 있다"며 "선택임신은 물론 막연한 불안감만 가지고 국내 법이 허용하는 범위를 넘어서 이미 하나의 생명체인 배아를 없애는 것은 '생명 솎아내기'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체외수정 시술 보험 적용 불임 지원 대상자 늘려야
■ 불임부부 지원 개선책은
초혼 연령이 늦어지는 가운데 운동 부족으로 인한 비만, 사회 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 등 각종 요인이 겹치면서 불임 부부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조사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06~2010년) 불임으로 병원 진료를 받은 인원은 2006년 14만8,408명에서 2010년 18만4,576명으로 5년간 24.4% 가량 증가했다.

지난해 2월 황나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이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불임 실태에 대한 전국적인 통계가 없는 가운데 표본조사자료를 토대로 추정한 결과 임신 경험이 없는 일차성 불임은 13.5%에 달했다. 부부 7쌍 중 1쌍이 불임으로 시달리고 있는 셈이다.

황 연구위원은 "불임치료 중인 여성의 94.6%가 정신적 고통과 우울증으로 힘들어 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며 "체외수정 시술로 이들은 1회당 평균 445만원을 지출했다"고 전했다.

정부는 지난 2006년부터 불임부부 지원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월 소득이 전체 가구 평균의 150% 이하인 가구 중 여성연령이 44세 이하일 경우 지원 대상이 된다. 이들은 정부로부터 체외 수정 등 시술비용의 50%에 해당하는 1회당 150만원을 3회까지 보조받고 있다.

이 사업은 출산장려정책의 일환으로 도입됐지만 합계출산율은 ▦2007년 1.13명 ▦2008년 1.19명 ▦2009년 1.15명 ▦2010년 1.2명 ▦2011년 1.2명으로 여전히 낮은 수치에 머물러 있다.

황 연구위원은 "불임은 직접적으로 생명을 위협하는 게 아니라는 인식 때문에 보험 적용의 우선 순위에서 밀려 있다"며 "체외수정 시술 및 관련 처치에 대한 보험 적용, 불임지원사업 대상자 확대, 시술비용의 적정화 등이 정책적으로 반드시 개선돼야 할 부분"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