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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명치료 중단, 가족이 결정할 수 있을까

지난달 17일 서울 종로구의 서울대병원 응급실. 10년간 대장암과 싸워온 김모(78) 할머니가 거친 숨을 내쉬었다. 암이 간까지 전이돼 항암 치료를 받았지만 부작용 탓에 응급실에 실려 왔다. 하지만 가족들은 평소 “무의미하게 기계에 의지해 생명을 연장하지는 않겠다”고 했던 김 할머니의 뜻과 회생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의료진 판단을 고려해 심폐소생술을 거부키로 했다. 김씨 할머니는 12시간 만에 숨을 거뒀다.

 이처럼 상당수 병원에선 환자나 가족들이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겠다고 하면 이를 받아들이고 있다. 2009년 대법원이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 식물인간 상태로 입원해 있던 노인 환자의 인공호흡기 제거를 허용한 영향이 크다.

 하지만 현재 연명치료 거부나 중단에 대한 뚜렷한 법적 기준은 없다. 이 때문에 치료 중단을 두고 가족과 의료진 간에 법적 분쟁과 사법처리 논란이 벌어질 가능성이 상존한다.

 대통령 직속자문기구인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가 17일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의 법제화 필요성 등에 대한 국민 여론 수렴에 나선 이유다.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 김명희 연구부장은 “의견을 보내오면 위원들에게 전달해 11월 회의에서 논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앞서 보건복지부가 세브란스병원 사건을 계기로 논의기구를 만들었지만 환자를 대신해 가족이 치료 중단을 결정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가톨릭 등 종교계가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은 타인이 대신 판단할 수 없다”며 가족(대리인)의 대리의사 표시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울대병원 허대석(혈액종양내과) 교수는 “환자와 평소 함께 생활해 온 가족들의 의사를 반영해 환자가 존엄한 죽음을 맞을 권리를 인정해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진행한 생명나눔 국민인식도 조사에서는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에 찬성한다는 의견이 72.3%로 우세했다.

 일본·대만은 정부 가이드라인이나 법률을 통해 가족의 대리의사 표시를 인정해 주고 있다. 현재 국내에선 말기암 환자들에 대해서만 지난해 6월부터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 완화의료(호스피스)법이 시행되고 있다.

 위원회는 또 유전자 검사 범위에 대해서도 의견을 묻기로 했다. 현재는 키, 비만, 지능, 폭력성 등 19개 유전 항목만 검사가 금지돼 있다. 하지만 검사 기술이 발달해 다른 유전항목을 활용하면 금지 항목의 정보도 알아낼 수 있다. 삼성서울병원 김종원(진단검사의학과) 교수는 “질병 치료 목적이나 학문적으로 검증된 유전정보만 검사를 허용하는 게 윤리적”이라고 말했다. 반면에 개인이 자신의 유전정보를 알 권리도 존중돼야 한다는 주장도 많다. 복지부는 위원회가 권고안을 만들면 이를 토대로 정부 입장을 정리한다는 방침이다. 의견이 있으면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 홈페이지(www.nibp.kr)에 올리거나 연구원에 우편으로 보내도 된다.

◆ 생명윤리 논란 2제 


①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 가족(대리인)의 성인 말기환자 치료 중단 결정을 인정할 것인가
- 말기환자의 평소 가치관·신념으로 치료중단 의사 추정 가능한가
- 연명치료 중단 관련 사항을 법제화해야 하나(현재는 환자가족과 병원 간 합의)

② 유전자검사 제한 범위
- 지능·외모 등 19개 검사 금지 항목 외에는 모두 허용해야 하나
- 출산 전 유전자 검사는 154가지 외엔 금지해야 하나
- 유전자 검체를 해외로 반출해도 되는가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2005년 1월부터 시행된 생명윤리법에 따라 대통령 산하에 설치된 자문기구. 윤리·과학계를 대표하는 민간위원 14명과 보건복지부·교육과학기술부·법무부 장관 등 6명이 정부 측 당연직 위원으로 참여한다. 위원회는 줄기세포 연구의 종류·대상·범위를 비롯해 금지하는 유전자검사의 종류 등 안건을 심의한다.

관련 기사 : http://joongang.joinsmsn.com/article/aid/2012/09/18/8972700.html?cloc=olink|article|defaul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