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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취소는 연구 실수 탓?…67%가 표절·조작 때문

1977년~올해 5월까지 2047건 분석
40년새 취소 10배…단순실수 21%뿐
미국·독일·일본이 전체 70% 차지
조작 밝혀져도 꾸준히 인용되기도

미 예시바대 연구팀 조사 결과

독일 루트비히스하펜병원은 지난 8월 마취과장으로 재직하던 요아힘 볼트 전 기센대 교수의 연구윤리 위반 및 논문조작 혐의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볼트 박사는 무혈 수술용 합성전분 연구 전문가로 <진통과 마취> 등 16개 저널에 제출한 논문 102개에 대한 조사를 받았다. 이 가운데 90여개 논문이 이미 각종 데이터 조작 등의 이유로 취소됐으며, 병원 쪽은 볼트를 형사고발했다.

학술지나 저널이 취소하는 과학논문의 대다수는 단순한 실수(에러)가 아닌 조작 등 부정행위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는 대부분의 논문들이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 철회된다는 이전 연구와는 다른 결과여서 주목을 받고 있다.

아투로 카사데벌 미국 뉴욕주 예시바대 교수 연구팀은 8일 미국 국립생물정보센터(NCBI)의 문헌정보 데이터베이스인 ‘펍메드’에 1977년부터 올해 5월 사이에 취소된 것으로 기록된 생명과학 및 의학 분야 논문 2047건을 분석한 결과, 단순한 실수로 논문이 철회된 경우는 5분의 1에 불과하고 3분의 2는 조작, 표절 등 부정행위 때문인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연구팀의 논문은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 최근호에 실렸다.

연구팀은 학술지나 저널이 논문을 취소한 사례에 대해 연구윤리국(ORI) 보고서, 신문 기사, ‘리트랙션 워치’(논문 취소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사이트) 등 2차 자료를 토대로 취소 사유를 재평가한 결과 158건의 사유가 재조정됐다. 특히 단순 실수가 조작으로 바뀐 경우는 742건 중 16%인 118건에 이르렀다. 그 결과 취소 사유로 조작이 43.4%로 가장 많았고, 중복 출판이 14.2%, 표절이 9.8%였다. 부정행위에 의한 논문 취소가 67.4%로, 단순 실수 21.3%의 세배를 넘었다. 이는 2010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의 한 의학홍보자문회사가 2000~2010년 펍메드에 취소된 것으로 기록된 논문 742건을 대상으로 조사해 “73.5%가 단순 실수에 의한 것이고, 조작에 의한 것은 26.6%에 불과하다”고 학술지 <의료윤리>에 보고한 내용과 크게 다른 것이다.

카사데벌 교수는 “단순 실수인지 조작인지 조사가 마무리되기 전에 논문이 철회돼 정확한 이유가 적시되지 않는 등의 이유로 논문 취소 사유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며 “<생화학저널>(JOBC)처럼 취소 사유를 밝히기를 거부하는 학술지조차 있다”고 말했다.

조작에 의한 논문 취소 사례는 1970년대에 비해 최근 10배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조사 대상 논문의 국적은 모두 56개로, 과학연구 역사가 오래된 국가들은 조작에 의한 논문 취소가 많아 미국, 독일, 일본이 70%를 차지했다. 반면 연구 역사가 짧은 중국과 인도에서는 표절이나 중복 출판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우리나라는 조작에서는 2.2%, 표절은 2.5%, 중복 출판에서는 6.3%를 점유했다. 논문인용지수(임팩트 팩터)가 높은 저널의 경우 조작을 사유로 논문이 취소된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반면 임팩트 팩터가 낮은 저널은 표절이나 중복 출판 비율이 높았다. 논문 취소가 많은 저널은 <사이언스>(70건), <국립과학원회보>(69건), <생화학저널>(54건), <네이처>(44건) 차례였다.

 

하지만 부정행위가 연구계 전반에 만연한 것은 아닌 것으로 연구팀은 분석했다. 페릭 팽 미국 워싱턴주립대 교수는 “5번 이상 논문 취소 경력이 있는 38개 연구팀이 전체 조작 사유 논문 취소의 43.9%를 차지하는 것으로 집계됐다”고 말했다. 볼트 박사가 이들 조사에서 논문 80개가 취소돼 가장 많았고, 바이러스 전문가인 일본의 모리 나오키 류큐대 교수가 36건, 암 전문가인 독일의 프리드헬름 헤르만 박사가 21건으로 뒤를 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조작이 밝혀진 뒤 논문 인용이 급격히 줄어드는 경우도 있지만 조작이 드러났음에도 꾸준히 인용 되는 논문들도 있었다는 점이다. 2000년 분자 규모의 트랜지스터를 만들었다고 조작한 독일 물리학자 얀 헨드리크 쇤의 논문은 2002년에 철회됐음에도 올해 6월22일 현재까지 297건이 인용됐으며, 황우석 박사의 2004년과 2005년 <사이언스> 논문도 2006년에 철회됐음에도 각각 368건, 234건의 인용 횟수를 기록하고 있다.

카사데벌 교수는 “논문 취소가 증가하는 것은 승자독식 경제체제에 바탕을 둔 과학의 보상 시스템이 하나의 원인이라고 생각한다”며 “재원은 부족한데 승자에게 지원금과 일자리, 상금을 몰아주는 것이 부정행위를 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관련 기사 : http://www.hani.co.kr/arti/science/science_general/55482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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