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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을 품위있게” 국내서도 ‘웰 다잉’ 운동

동아일보 원문 기사전송 2012-09-06 03:15 최종수정 2012-09-06 03:20

 

부산 금정구에 사는 박정순 씨(68)는 4월 남편(69)과 함께 서류 하나를 만들었다. 죽음을 앞뒀을 때 의료진과 가족이 부부의 의사를 존중해 수명 연장을 위한 무의미한 치료를 중단해달라는 내용의 서류다.

박 씨는 2005년 당시 폐암 말기였던 아버지(81세)의 마지막을 지켜봤다. 동생들은 치료 방법에 대한 모든 결정을 그에게 맡겼다. 어떤 식으로 치료하든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 평생 죄책감을 느낄 것 같았다. 암 세포가 온몸에 퍼져 수술이 불가능한 상황. 아버지는 고통스럽게 투병하다 숨을 거뒀다.

박 씨는 “앞으로 내 아이들이 죄책감 없이 부모를 보내고, 나 자신도 편안하게 죽음을 맞으려면 연명치료에 대해 확실하게 의사를 밝혀놓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 서류를 작성했다”고 말했다.

이 부부처럼 연명치료를 거절하겠다며 사전의료의향서라는 서류를 작성한 시민들이 2010년 12월 이후 5374명에 이른다. 무의미한 연명치료의 거절, 시기, 작성자·증인 서명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7일에는 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사실모)이 정식 발족한다. 의료계, 법조계, 학계, 종교계, 비정부기구(NGO) 관계자가 두루 참여한다.

발기인으로 참여하는 손명세 연세대 보건대학원장은 “우리가 평생 지출하는 의료비의 절반을 죽기 전 한달 동안, 25%를 죽기 전 3일 동안에 쓴다. 무의미한 생명 연장에만 몰두할 게 아니라 본인의 의사를 존중해 품위 있게 죽음을 맞도록 하자는 취지다”라고 설명했다.

이 단체는 앞으로 사전의료의향서 홍보와 교육에 나서면서 품위 있는 죽음을 위한 ‘웰 다잉’ 운동을 벌일 계획이다. 전화(02-2228-2670)로 신청하면 서식을 우편으로 보내준다. 원본은 집에 보관하고 사본을 보내면 확인증 카드를 준다.

의료 현장에서는 사전의료의향서를 정식으로 활용하지 않는다. 연명치료를 중단해야 가능한 존엄사(소극적 안락사)가 아직은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아서다. 연세대 의대의 이일학 교수(의료법윤리학과)는 “죽음이 불가피할 땐 자기결정권이 우선한다는 판례가 있으니까 앞으로는 사전의료의향서의 법적 효력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존엄사법은 18대 국회 때 발의됐지만 통과되지 못했다.

국내에서는 뇌손상으로 식물인간 상태가 된 김모 할머니에 대해 대법원이 2009년 5월 처음으로 존엄사를 인정했다. 당시 김 할머니 가족들은 연명치료을 중단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병원이 받아들이지 않자 소송을 제기했다. 김 할머니는 대법원 판결에 따라 2009년 6월 인공호흡기가 제거됐고, 2010년 1월 숨졌다.

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자료출처 : http://news.nate.com/view/20120906n014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