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재 일자 : | 2019-06-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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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 | 장기기증, organ donation, 장기이식, organ transplant, 옵트인, opt-in, 옵트아웃, opt-out, 추정적 동의, deemed consent, 자율성, autonomy, 이타주의, altruism, Max and Keira’s Law |
영국의 장기이식대기자 6명 중 1명은 이식을 받기 전에 사망하거나 이식 부적격자가 됨. 많은 사람들은 이 상황이 잉글랜드의 옵트인(opt-in) 기증제도 때문이라고 생각함. 만약 여러분이 사망 후 장기를 기증하고 싶으면 기증을 허락한다고 공식적으로 표현해야 함.
하지만 이제 사정이 달라질 것임. 2020년 4월부터 영국에 거주하는 모든 18세 이상 성인은 사망 후 장기기증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될 것이기 때문임. 만약 기증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기증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공식적으로 표현해야 함. 이 제도가 바로 거부하지 않으면 기증후보자가 되는 옵트아웃(opt-out) 기증제도임.
공식적인 거부의사가 없으면 동의한다고 전제하는 ‘추정적 동의’ 개념은 장기를 적출하고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국민건강보험(NHS)의 기초를 형성할 것임. 하지만 이는 논란의 여지가 있음. 만약 우리가 동의에 대하여 논의하는 것을 멈추고, 이타주의에 대하여 논의하기 시작한다면 이 논쟁의 많은 부분을 피할 수 있을 것임.
동의한다고 추정하는 것에는 결함이 있음
법적으로 동의는 사람의 신체에 대한 간섭을 정당화하는 주요 요소임. 그것은 우리가 신체를 어떠한 형태의 재산으로도 인식하지 않은 채 우리의 신체에 일어나는 일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에 가까움. 동의하거나 유보하는 것은 우리의 신체에 일어나는 일, 즉 삶과 죽음 이후를 통제하는 수단임. 하지만 동의는 단순히 ‘통제’보다 훨씬 더 큰 개념을 포착함. 동의는 우리의 개인적인 자율성을 표현하는 한 방법임.
자율성은 자율규제(self-governance)나 자기결정(self-determination)을 의미할 수 있음. 즉 우리가 살고 싶은 방식을 선택하고, 그러한 선택을 반영하는 결정을 내리는 것임. 우리가 입는 옷, 먹는 음식, 투표하는 정당, 형성하는 친밀한 관계 등 모든 일상적인 결정에 자율성을 행사할 수 있음.
우리는 우리가 가진 믿음, 의견, 가치관을 반영하기 때문에 우리가 이러한 선택을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음. 때때로 우리의 믿음은 우리의 행동과 선택에 분명한 동기를 부여함. 필자는 설탕섭취 제한을 본인의 신체를 건강하게 해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선택할지도 모름. 아니면 어느 정도 자제력(self-restraint)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에 본인이 가진 자존감(sense of self)에 있어서 중요한 가치관일 수 있음. 이 간단한 예에서 우리는 자율성이 본인의 믿음과 가치관부터 본인의 행동까지의 명확한 선을 나타낸다는 것을 알 수 있음.
하지만 우리의 믿음과 가치관을 식별하는 것이 항상 쉬운 것은 아님. 이런 것들이 바뀌는 것은 상당히 정상적인 일임. 몇 년 만일 수도 있지만, 매일일 수도 있음. 우리의 핵심적인 선호 중 일부는 도전적인 정보나 논쟁에도 불구하고 분명하고 안정적이고 확고할 수 있음. 예를 들어 사형의 도덕성에 대한 직관적인 신념(Intuitive convictions)은 흔들리지 않는 것으로 증명할 수 있음.
다른 것들은 우리의 기분, 주위 사람들의 의견이나 새로운 경험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 우리는 연명의료나 낙태와 같은 논란이 많은 의학적 치료에 대한 태도를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더욱 심사숙고할 것임.
우리의 태도와 믿음 중 일부는 참는 것이 상당히 불편할 수 있음. 우리는 우리의 욕망과 그에 대한 반응으로 인한 선택에 대하여 부끄러워할 수도 있음. 때때로 우리는 우리가 왜 특정한 것을 하거나 생각하는지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음. 우리의 믿음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모순되고 복잡할 수도 있음.
적어도 법률적인 관점에서 동의는 우리가 충분히 이해하고 확인할 수 있는 우리의 믿음에 의하여 통지를 받아 간단한 결정을 내리는 행위로 볼 수 있음. 하지만 현실은 우리의 의사결정과정, 정체성 및 자존감이 그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것임.
보다 친절한 사회를 위하여
신체를 통제하고, 타인이 간섭하는 것을 막는 것은 자율성의 핵심임. 우리의 신체는 아마도 우리 자신에게 가장 친밀한 부분일 것임. 타인이 우리 신체에 접근하도록 허락하는 것, 특히 신체의 일부를 떼어내는 것은 우리의 믿음과 가치관에 가장 심각한 충돌을 일으킬 가능성을 가지고 있음.
만약 우리가 본인의 ‘자율성’과 자율적인 결정을 내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이해하기 위하여 분투해야 한다면, 타인의 믿음을 추정하고 타인의 신체가 어떻게 다뤄지기를 원하는지를 확실하게 결정하는 것은 불가능한 과업임.
사람들이 기증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할지 추측하기보다는 장기기증사업에 대한 열망에 대하여 더 개방적이어야 함. 사업은 ‘타인이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기증을 사람들이 원하는 사회를 조성하기 위한 것임.
이타주의를 향한 이러한 접근은 이미 법률에 내포되어 있음. 심지어 새로운 법률의 이름(Max and Keira’s Law; 이식받은 소년 Max와 기증한 소녀 Keira의 법률)조차 9살 소녀의 비극적인 죽음이 11살 소년에게 심장을 이식하여 생명을 구한 이야기를 상기시킴. 좋은 행위에 대한 감정적인 이야기는 단기적으로는 태도를 바꿀 수 있지만, 변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타주의를 향한 더 체계적이고 뿌리 깊은 접근이 필요함.
많은 사람들에게 기증 결정은 이미 이타주의에 의하여, 보상 없이 타인을 돕고자 하는 욕구에서 동기를 부여받은 것임. 법률은 이를 반영함. 장기기증에 대한 보상을 주거나 받는 것은 범죄임. 만약 법률이 이타주의의 추정이 그렇게 명백하다면, 왜 기증의 법률적인 근거에 그렇게 명시하지 않는가? 동의를 추정하는 대신 이타주의가 보호하고 촉진할 만한 공동의 사회적인 가치라고 추정하는 것은 왜 안 되는가?
법률 : https://www.legislation.gov.uk/ukpga/2019/7/contents/enacted/data.htm
잉글랜드 opt-out제도 도입 관련 해외언론동향 : http://www.nibp.kr/xe/news2/1302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