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9호] 불편함과 부족함을 선택하는 용기

다동생각_9호_최종.jpg

 

불편함과 부족함을 선택하는 용기

 

국가생명윤리정책원 원장 김명희

 

어린 시절을 회상해보면, 여름은 비로 시작되었다. 때로는 장마가 한 달씩 계속되기도 했다. 지루한 장마를 견디고 나면 본격적으로 무더위가 시작되었고, 사람들은 무더위를 핑계로 휴가를 떠났다. 더운 날씨 덕에 참외, 수박 등 여름 과일들이 지천으로 흔해지며 오랜만에 여유와 풍성함을 누렸다. 그러나 이런 여름을 추억하는 공식은 이제 깨어진 것 같다.

 

여름이 아니어도 수박이나 참외를 슈퍼마켓에서 언제든지 살 수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여름이 되어도 더 이상 장마 같은 장마는 오지 않는다. 그저 후덥지근한 날씨에 갑작스레 하늘에 구름이 끼고 천둥 번개가 치면서 무섭게 소나기가 퍼붓는 날들이 이어질 뿐이다. 그러고는 언제 비가 왔냐는 듯 멈추고, 이내 덥고 습습한 날씨로 변해버린다. 마치 언젠가 방문했던 태국의 날씨 같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 이제 우리나라도 아열대 지역으로 편입되는 것인가?

 

우리가 지나고 있는 이번 여름에도 장마는 없고, 한낮 최고 기온이 38˙C까지 오르는 등 폭염의 기세만 경험할 뿐이다. 지구 반대편의 미국과 캐나다에서도 열돔(heat dome) 현상*으로 40˙C를 웃돌아 수 백 명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우리는 지금, 말로만 들었던 지구 온난화(global warming) 현상을 절실히 체감하고 있다.

* 열돔(heat dome) 현상 : 지상 57km 높이의 대기권 중상층에 발달한 고기압이 정체하거나 아주 서서히 움직이면서 뜨거운 공기를 지면에 가둬 더위가 심해지는 현상. 이는 고기압에서 내려오는 뜨거운 공기가 마치 돔(반구형 지붕)에 갇힌 듯 지면을 둘러싼다고 해서 붙은 명칭

 

최근 세계기상기구(WMO)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5년 내에 지구 온도가 산업화 이전 수준보다 1.5˙C 더 높아질 확률이 40%에 달한다고 한다. 지구 온도 상승으로 인해 극지방의 빙하가 해빙되면서 해수면이 상승되고, 비가 내리지 않은 아프리카 등에서는 사막이 확장되는 사막화 현상이 발생하여 심각한 환경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러한 환경 문제는 지구 온난화의 결과이고, 지구 온난화의 주요 원인은 에너지 과다 사용으로 인한 이산화탄소의 발생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지구 온난화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여야만 한다. 최근 자주 거론되는 탄소 저감 정책, 탄소중립, 탄소세, 탄소배출권은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정책을 의미한다. 각국 정부와 국제기구들은 이산화탄소 발생을 줄이기 위하여 다양한 정책들을 도입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 차원에서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일상에서 개개인의 실천이다. 이산화탄소 배출을 증가시키는 생산 현장과 이를 조장하는 우리의 반성과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는 호기심을 채우고, 일상에서 편리함과 즐거움을 위해 필요 이상의 과도한 소비를 하고 있지 않나?

 

내가 어렸을 때는 비누 하나로 세수도 하고 머리도 감고, 발도 닦고, 목욕도 했다. 빨간색 예쁜이 비누 하나로 모두 닦는 것이 오케이(OK)이었다. 반듯한 케이스도 없이 판매되었던 동그랗고 빨간 비누!

 

그런데 요즈음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화장을 닦을 때는 리무버·클렌징 오일, 세수할 때는 페이셜 클렌져와 스크럽, 머리 감을 때는 샴푸·린스·트리트먼트, 샤워 할 때는 바디 워시 또는 샤워 젤, 심지어 발을 닦을 때는 발 전용 스프레이 비누 등을 사용한다. 이 외도 다양한 세제들이 용도별로 부위별로 판매되어 사용되고 있다. 이런 세제 종류는 모두 크고 작은 일회용 용기에 담겨있어, 사용 후 곧바로 버려진다.

 

또한 날씨가 조금만 더워도 에어컨을 틀어 실내 온도를 낮추고, 조금만 추우면 난방기를 틀어 온도를 높인다. ‘삼보 승차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세 걸음 이상을 걸어가야 하면 자동차를 타는 것이 일상이고, 운전자 혼자 타고 다니는 나 홀로승용차도 부지기수다. 반드시 자동차의 운행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

 

돌이켜보면 비누 하나로 온몸을 닦으면서도 부족함 없이 건강하게 살아왔고, 에어컨이 없어 냉방이 안 되는 사무실에서도, 난방이 안 되는 방에서도 우리는 잘 지내왔다. 혹자는 말하리라! “아이- 저 분 라떼 꼰대이시네.”

 

플라스틱이 썩지 않는다고? 생분해성 플라스틱을 이용하면 되지!

화석 연료가 문제야? 그럼 어디서나 설치 가능한 친환경 태양광 에너지가 있잖아!

자동차 배기가스가 걱정된다고? 배기가스 배출 걱정 없는 전기차와 수소차도 있어!

 

막연하게 친환경기술과 같은 과학기술이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발된 기술 역시 또 다른 문제들을 만들어 낸다. 만약 플라스틱 대신 생분해성 플라스틱을 사용한들 재활용되지 않으면 쓰레기로 소각되어 유해성 물질이 배출되고, 태양광 발전의 증가는 패널 폐기의 증가로 이어지며, 전기차나 수소차 이용의 증가는 수명을 다한 충전용 배터리를 끊임없이 뱉어 낼 것이다.

 

인간의 안락함에 대한 욕망과 과소비로 인한 문제를 발전된 과학기술로 해결이 가능하다는 생각은 인간 중심적인 안일한 태도를 그대로 보여준다. 좀 더 적극적으로 인간의 욕망과 과소비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소비가 미덕인 시대는 지났다. 현명한 소비를 추구하고 지구의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욕망을 조절하고, 그리고 실천하여야 한다.

 

우리의 실천은 합리적 소비를 넘어 윤리적 소비를 지향해야 할 것이다. 합리적 소비가 최소한의 비용(가격)으로 최대한의 만족감을 추구하는 소비 형태라면, 윤리적 소비는 물건의 가격이나 품질보다 환경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가치를 두는 소비이다. 윤리적 소비는 때로 품질이 좋지 않은 물건에 비싼 가격을 지불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행위는 지구라는 공동체를 이롭게 하기 때문에 윤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일상에서 윤리적 소비가 실천되고, 이것이 일상화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 정책원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정책원에서는 종이 없는(paperless) 결제 및 보고 시스템 구축, 개인용 컵 사용, 에코백 사용 등을 실천해 왔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미흡하다. 정책적으로 따라가기 위해 마지못한 흉내로 끝날 것이 아니라, 심각성을 인식한 개개인의 절실한 실천이 필요하다. 우리가 시원한 곳에서 일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남태평양 작은 섬나라들은 바다 속으로 가라앉고 있고, 아프리카는 지독한 가뭄으로 사막이 확장되면서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다.

 

나 하나가 무엇을 할 수 있으랴?’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하지만 함께할 때 혼자서는 불가능했던 일들이 이루어질 수 있다. 불편하지만 에너지와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는 일은 없는지 함께 생각하고 실천한다면, 그 실천이 씨앗이 되어 지구온난화 문제가 해결되는데 일조할 수 있다. 올해 여름, 지구가 더 뜨거워지는 것을 멈추는데 도움이 되기 위해 정책원 직원들이 조금은 불편하고 부족하게 사는 것을 선택하는 용기를 갖기를 바란다.

 

 

첨부파일
이미지 다동생각_9호_최종.jpg (792.1KB / 다운로드  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