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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호] 흔들림 없는 삶을 위한 안목 원려(遠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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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림 없는 삶을 위한 안목, 원려(遠慮)

 

국가생명윤리정책원 원장 김명희

 

인류가 처음 나타난 구석기 시대 이후부터 신석기 시대가 도래하기 까지는 약 1만 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급변하는 진화기에 적응하며 초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지금 이런 초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흔들림 없는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논어 위령공편에서 공자는 인생에 필연적으로 놓여있는 근심과 걱정을 이겨내는 방법으로 인무원려 필유근우(人無遠慮, 必有近憂)’를 언급한다. 이 말을 풀어보면 사람이 멀리 내다보는 생각이 없으면, 반드시 가까운 근심이 생긴다는 말이다. 여기서 멀리 내다보는 생각, 즉 멀리 내다보는 안목이 바로 원려(遠慮)이다. 원려는 현재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에 연연해하지 않고 10, 20년 뒤에 일어날 일을 미리 내다볼 줄 아는 지혜의 눈으로 볼 수 있다.

 

삼성 이병철 회장의 원려와 관련된 유명한 일화가 있다. 1980년대 초반 제2차 석유 파동으로 힘든 시기에 이병철 회장은 의외의 선택을 한다. 당시 이병철 회장은 삼성에서 반도체를 하지 않으면 삼성의 미래는 없다고 생각했다. 삼성은 반도체 사업을 시작하고 십 수 년 동안 성과물은 없이 지속적인 투자만 계속되었다. 그 과정을 견디어냈기에 오늘의 삼성 반도체 산업이 있고, 이는 대한민국의 먹거리가 되었다. 이병철 회장은 회사의 위기를 맞은 시점에 당장 급한 불끄기에만 집중하지 않고 삼성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미래를 준비한 것이다. 30여 년 전 이병철 회장의 멀리 내다보는 전략이 없었다면 현재의 삼성 신화는 불가능했다.

 

그 당시 평범한 사람들은 아마도 이병철 회장의 행동이 삼성에 이익이 되는 결정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병철 회장은 당시의 삼성이 미래에 성공한 삼성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현안 해결에만 관심을 갖지 않고 미래에 대한 투자를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30년 후 미래를 고민하지 않는다. 그저 현재 머릿속의 계산기를 동원하여 어떻게 하면 지금 당장 손해를 덜 보고 더 많은 이득을 취할지 눈앞의 이익에 집중하기 마련이다.

 

에드워드 카(Edward H. Carr)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유명한 정의를 남겼다. 나는 개인에게도 이 정의를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와 현재의 내가 끊임없이 서로 돌아보고 대화하여 미래의 나를 만들어야 한다. 이런 미래의 나는 더 나은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내가 되도록 하여야 한다. 현재의 내가 과거를 반성하고 성찰하고 멀리 내다보면, 미래의 내 삶의 목표가 더욱 분명해지고 위기와 불안에도 흔들리지 않게 된다. 지금 우리에게 흔들림 없는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는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바로 멀리 내다보는 안목, 원려이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밑지는 것이 남는 장사라는 말이 있다. 과거의 나는 이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지는 것은 지는 것이고, 밑지는 것은 손해를 보는 것이지 결코 이익을 남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후 삶을 되돌아보니 이 말처럼 마음에 와 닿는 게 또 없다. 사람은 오늘 하루만 사는 하루살이가 아니다. 인간은 비록 언제가 죽겠지만, 어제를 살았고 오늘을 살고 있고 내일을 살아야 하는 연속 선 상의 존재이다. 현재의 내가 지는 것은 미래의 승리를 위한 출발이 될 수도 있으며, 지금 내가 밑지는 것은 앞으로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한 투자를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지금의 내가 성장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오늘만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원려를 갖고 미래의 나를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하기 위해 과거의 나를 성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성찰을 통해 우리는 지금 나의 가치관을 바로 세워 미래를 보는 눈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과거의 나를 성찰하는 것은 과거에 대한 후회나 미련을 두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반추하고 반성하는 행위이다. 이 행위는 현재의 내가 추구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미래의 나를 위해 현재의 내가 보충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살피는 작업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 성찰은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가치관, 나의 신념으로 탄생한다.

 

농부가 소의 쟁기를 끌어 밭농사를 지을 때, 밭고랑을 일자로 곧게 일구기 위해서 그가 서 있는 발밑을 보는 것이 아니라 저 멀리 서 있는 나무를 보며 소를 이끈다고 한다. 일자로 곧은 밭고랑은 흔들리지 않은 삶이며, 저 멀리 서 있는 나무는 원려가 아닌가 싶다. 원려를 가지면 지금 당장의 상황에 흔들리지 않아 근심이 줄어 매 순간 일희일비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원려는 현재의 내 삶이 흔들리지 않게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 미래의 나를 더욱 풍성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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