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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악몽’ 재연?… 한국 줄기세포 연구에 또 상처

■ 서울대 수의대 강수경 교수 ‘사진 중복게재’로 국제논문 취소

 

8일 국제학술지 ‘항산화 및 산화환원신호전달(ARS)’의 찬단 센 편집위원장은 익명의 제보자에게 e메일 한 통을 받았다. 14편의 논문에서 사진 중복 게재 등 각종 의혹이 있다는 내용의 e메일이었다. 각 논문을 책임지는 교신저자는 모두 서울대 수의대 강수경 교수였다. 강 교수는 2008년 사람의 지방세포를 줄기세포로 바꾸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등 국내 줄기세포계에서 촉망받는 연구자다. e메일은 ARS를 포함한 10종의 국제학술지 편집위원들에게 동시에 전송됐다. ARS는 과학논문인용색인(SCI)급 국제학술지로 논문의 영향력을 뜻하는 임팩트팩터의 지수가 8.209에 달하는 권위지다. 국내 학술지 평균은 2점대이다.

○ 익명의 제보가 국제학술지의 논문 게재 취소시켜

제보자는 70쪽 분량의 슬라이드 자료에 강 교수팀의 최근 논문부터 2006년 논문까지 사진을 중복 게재한 부분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서로 다른 연구에 동일한 사진을 사용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사진의 밝기를 조절하거나 180도 회전시켜 사용한 경우도 있었다.     
 



논문 14편 중 ARS에 의혹이 제기된 강 교수팀의 논문 4편은 모두 줄기세포와 관련된 것이었다. ARS 편집진은 곧바로 강 교수에게 연락했다. 강 교수는 이 중 두 편의 논문에 “부정확한 부분이 있었다”고 시인했다. ARS 측은 9일 이 논문들의 게재 취소를 공식 발표했다.

강 교수는 다른 논문 두 편에 대해서는 일부 오류를 인정하면서도 추가 실험을 통해 새로운 자료를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ARS 편집진은 이미 출판된 논문은 수정할 수 없다며 나머지 논문 두 편도 17일 모두 게재 취소했다. 센 위원장은 “학술지는 독자에게 양질의 정보를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다”며 “오류나 정확하지 않은 자료가 포함된 논문은 학술지의 질을 생각해 게재 취소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 내부 고발자 제도 개선 vs 제보자의 악의성 견제해야

해외 웹사이트인 ‘리트랙션워치’에는 21일 강 교수팀의 사례를 상세히 소개한 글이 올라왔다. 익명의 제보가 국제학술지에 실린 논문을 게재 취소하는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글이었다. 국내에는 25일 포스텍에 있는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브릭)’ 게시판을 통해 알려지기 시작했다. 젊은 생명과학자들이 연구정보를 나누는 브릭의 게시판에서는 2005년 황우석 박사팀의 논문조작 사태 때 황 박사의 줄기세포 사진이 조작됐다는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브릭 게시판에는 제보자가 제기한 의혹을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구자들이 강 교수팀에 대한 항의 글을 잇달아 올렸다. 그 외 교신저자 위주의 연구 행태에 대한 성토와 내부 고발자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 등으로 뜨겁게 달궈졌다. 논란이 과열될 조짐을 보이자 브릭 운영자 측은 이번 논란이 과학사회의 절차에 따라 진행될 수 있도록 지켜보자는 의견을 표명했다.

학계 일각에서는 이번 의혹에 포함됐을 수 있는 악의성을 견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서울대 수의대 강경선 교수는 “제기된 의혹을 면밀히 들여다본 결과 일부 오류는 있지만 80% 정도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며 “악의적인 의도가 섞여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 줄기세포 연구 또 위축될 수도

ARS 편집진은 강 교수팀이 받고 있는 의혹이 ‘단순 오류’인지 ‘의도적인 행위’인지를 판단하기 위해 강 교수팀이 보낸 해명 자료를 검토하고 있다. 서울대 연구처장인 이준식 기계항공공학부 교수는 “ARS 측의 최종 판단이 이번 주에 내려질 것”이라며 “단순 오류면 큰 문제가 없겠지만 의도적인 것으로 결론나면 연구진실성위원회를 소집해 처리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국내 줄기세포 연구자들은 이번 논란으로 우리나라의 줄기세포 연구가 또다시 위축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와 함께 연구의 엄밀성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높다.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이용석 생명복지조정과장은 “황 박사 사태로 정체됐던 국내 줄기세포 연구는 이후 꾸준한 노력으로 세계와의 연구 수준 격차를 3.6년까지 좁힐 수 있었다”며 “앞으로 학자 스스로는 연구에 완성도를 높여야 할 것이며 정부 역시 연구의 성과만을 재촉하는 정책을 지양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국줄기세포학회 정책공보이사인 오일환 가톨릭대 의대 교수는 “이번 논란과 관련해 학회 차원에서 대책을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이재웅 동아사이언스 기자 ilju2@donga.com

 

자료출처 : http://news.donga.com/3/all/20120529/4658006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