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철학자 Peter Singer 인터뷰] 감염병 대유행 동안 우리가 가장 좋은 일을 하도록 효율적인 이타주의가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생명윤리

등록일  2020.06.24

조회수  453

※ 기사Peter Singer: How Can Effective Altruism Help Us Do The Most Good During A Pandemic?

https://www.wbur.org/npr/879839276/peter-singer-how-can-effective-altruism-help-us-do-the-most-good-during-a-pandem

 

 이타주의적인 어떤 행동은 다른 행동보다 더 효율적일까? 철학자 Peter Singer는 우리가 위기사태 동안 우리 행동의 긍정적인 영향을 어떻게 극대화할 수 있는지 질문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더 큰 선(good; , 좋은 것, 좋은 일)을 검토함.

철학자 Peter Singer는 미국 프린스턴대(Princeton University) 생명윤리학 교수임. 그의 연구는 응용윤리, 철학, 효율적인 이타주의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 동물해방, 실천윤리, 구할 수 있는 목숨 등 저서를 냄. 최저빈곤선 아래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는데 헌신하는 비영리단체(The Life You Can Save)의 공동설립자이기도 함. 호주 멜버른대(University of Melbourne)와 영국 옥스퍼드대(University of Oxford)에서 학위를 받았음.

효율적인 이타주의(Effective Altruism)는 각자의 한도 내에서 선(good)을 최대화하는 것, 개인이 감내하며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영위하는 수준에서 충분한 윤리적인 삶을 목표로 하는 것임. 출처 : http://ch.yes24.com/Article/View/30626,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203156

  

우리는 더 큰 선에 대하여, 우리가 우리의 동료 시민들을 생각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야기하고 있음. 만약 우리가 동료 시민들을 같은 종의 일원으로 생각한다면 어떨까?

인간(Human beings)은 사회적인 포유동물임. 우리와 인류 이전의(pre-human) 조상들은 그 집단 내에서 서로 도우며 살아왔음. 그러한 역량은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라고 믿음.

효율적인 이타주의는 사람들(특히 젊은 사람들과 학생들)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드는 방식으로살아가고 싶다고 결정한 사회운동임. 본인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데 있어서 단순히 스스로를 위해 본인의 삶을 향유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한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함. 과거의 이타주의 형태와 아주 다른 점은 개별 기관들이 돈이나 시간을 기부받아 무엇을 할 것인지, 그렇게 하면 얼마나 좋은지를 진지하게 조사한다는 점임. 그리고 무엇을 하든 가치를 극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함. 실제로 일부 자선단체는 50달러나 100달러로 다른 기관보다 수백 배나 더 좋은 일을 할 것이라는 점을 발견함.

 

시각장애인 대상 안내견 제공을 예로 들어보겠음. 그것은 좋은 일임. 괜찮음. 그러나 자원으로 다른 무엇을 할 수 있는지도 생각해야 함. 안내견이 시각장애인을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도록 하는 데는 4만달러의 비용이 듦. 개발도상국에서 감염성 결막질환(trachomatis)에 걸린 시각장애인을 치료하는 데는 20~50달러가 듦. 이 시각장애인 사례로 비용을 계산해보면, 미국인 한 명에게 안내견 한 마리를 제공할 비용으로 400~2000명의 결막질환을 치료할 수 있음. 저는 무엇이 더 좋은 것인지 명확하다고 생각함.

 

그래서 저는 이성(reason)이 단지 본인이 원하는 것을 얻도록 돕는 어떤 중립적인 도구가 아니라고 생각함. 이성은 우리의 상황에 관하여 관점(perspective)을 부여하는데 도움이 됨. 그리고 이러한 점은 효율적인 이타주의 내에서 가장 의미 있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철학, 경제학, 수학을 기반으로 하는 사람들인 이유라고 생각함. 많은 사람들이 철학은 현실세계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러한 점은 놀라울 수 있음. 우리는 경제학이 우리를 더 이기적으로 만든다고 말하곤 하며, 수학이 멍청하고 따분한 사람들(nerds)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앎. 그러나 사실 그것이 차이를 만듦.

 

당신은 효과적인 이타주의에 대하여 이야기하면서 아주 오랫동안 그것을 옹호함. 감염병 대유행이 당신을, 당신의 생각(beliefs)을 어떤 방식으로든 시험했는가?

그렇지 않음. 저는 감염병 대유행이 저의 신념을 바꿨다고 생각하지 않음. 감염병 대유행이 보여주는 것은 효율적인 이타주의자로서 융통성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임. 궁극적인 가치와 목표 측면이 아니라, 상황이 어떻게 달라졌고, 달라진 상황에서 지금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라는 측면에서 그러함. 감염병 대유행은 당신이 가장 효율적일 수 있는 곳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려고 노력할 필요성을 보여줌. 말라리아, 설사, 그 밖에 다른 질환으로 목숨을 빼앗기는 사람들에게 계속 기부하는 것과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정착하고 스스로를 돌볼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더 좋은가? 좋은 비영리단체들이 그렇게 하고 있고, 아직도 해야 할 일이 있음.

 

그들이 그것이 효율적인 이타주의라고 불리는지 알고 있든 없든, 그것은 매우 흥미로움. 저는 많은 미국인들이 당신이 당신의 학생들에게 생각해보라고 하는 것과 매우 유사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다고 생각함. 그러나 저는 당신이 우리(미국인)의 개인주의에 대한 열렬한 사랑(worship)을 이 경험이 어떻게 해서든 일종의 사회적인 계약으로 바꾸도록 강요할 것이라고 생각하는지궁금함.

저는 그것이 우리가 진정으로 개인주의자가 될 수 없다는 것, John Donne가 말한 것처럼 어떤 사람도 고립된 집단(island)이 아니라는 것, 우리는 모두 함께 있다는 것,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나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 이는 나, 나의 가족, 나의 도시, 심지어 나의 조국이 아니라 우리가 더 큰 규모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는 쪽으로, 그 생각을 재고하게 하는 힘이 될 것 같다고 생각함. 우리는 우리가 도덕적으로 관심을 갖는 범위(circles)를 더 바깥쪽으로 밀어낼 필요가 있고, 우리는 이러한 모든 수준에서 상황(things)을 개선시킬 필요가 있음.